• 2023. 7. 8.

    by. 리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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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5년 로마 제국은 평화로운 시기가 끝나고 황제 자리를 놓고 다투면서 불안한 상태였습니다. 게르만족과 사산 왕조 페르시아등이 쳐들어오면서 경제도 어려워집니다. 4세기 무렵 콘슨탄티누스 황제가 다시 로마 제국을 일으키기 위해 힘썼지만, 로마제국은 점점 혼산스러워지면서 동로마와 서로마로 나누어지고 말았습니다. 

     

    1. 게르만족과 프랑크 왕국

    4세기 후반, 중앙아시아의 유목 민족인 훈족에서 밀려나 살 곳을 빼앗긴 게르만족이 대규모의 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때 부터 북유럽에서 로마 제국으로 쳐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로마 제국은 게르만족의 잦은 침입을 받던 중 게르만족 출신의 로마 용병장 오도아케르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서로마제국은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게르만족은 200년 동안 로마 제국의 영토안에서 여러 나라를 세웠고, 그 여러 왕국 중 게르만족 부족의 연합체인 프랑크 왕국은 8세기 후반 유럽의 대부분을 통일했습니다. 프랑크왕국은 로마 문화가 발달했던 갈리아 지방에서 세력을 키웠으며, 프랑크족은 기독교로 개종하여 로마 카톨릭교회의 도움을 받아 카롤루스 대제는 이베리아반도를 제외한 서유럽에서 지배적인 세력이되어 대부분을 정복했습니다. 이때 로마 문화와 크리스트교, 게르만족의 문화가 합쳐진 서유럽 문화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카롤루스가 대제가 죽은 뒤 자손들 사이에서 영토분쟁이 일어나 프랑크 왕국은 세 나라로 분열되었고, 현재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노르만족 바이킹 롱십

    2. 노르만족의 바이킹

    9세기 후반부터 북유럽의 스칸디나비아반도에 살고 있던 게르만족의 일파인 노르만족이 새로운 땅과 부를 찾아 유럽을 침략하기 시작했습니다. 노르만은 북쪽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노르만족은 룬이라는 글자와 신화를 노래한 문학 에다 등 독특한 자기들만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노르만족의 바이킹은 롱십과 숙련된 선원들, 그리고 뛰어난 항해술을 가졌습니다. 롱십은 폭이 좁고 길어 얕은 바다에서도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은 바이킹의 배입니다. 

    바이킹은 처음에는 북유럽을 침략하던 해적이었지만 서서히 머물러 살면서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할 수 있는 땅을 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이킹은 1066년 윌리엄과 노르만족의 군대는 영국을 침략하여 영국을 차지하였고,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롤드2세를 물리쳤습니다. 이 사건은 영국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노르만의 통치로 윌리엄은 영국의 왕이 되었고, 그는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노르만 추종자들에게 땅을 재분배했으며, 영국의 귀족은 대부분 노르만 귀족으로 바뀌었습니다.  바이킹은 영국뿐 아니라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북미에 이르기까지 땅을 개척하였고, 러시아 땅을 점령한 스웨덴 출신 바이킹들을 루스라고 불렀는데, 러시아라는 나라이름을 루스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3. 봉건사회

    프랑크 왕국의 분열이후 노르만족, 이슬람 세력 같은 이민족의 침임으로 유럽이 혼란에 빠지면서 중세 유럽에는 봉건 사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북쪽에서는 바이킹, 동쪽에서는 중앙아시아의 마자르족이, 남쪽에서는 이슬람 세력이 유럽을 위협하면서 왕의 권력이 점점 약해져서 유럽 사람들은 스스로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했습니다. 왕은 귀족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는 대신 귀족으로부터 충성을 맹세받았고, 귀족은 훈련된 기사들을 데리고 왕을 위해 싸웠습니다. 기사를 거느린 귀족은 바로 영주이며, 기사는 영주를 위해, 영주는 위해 싸우는 것을 명예로 여겼으며, 이렇게 확립된 통치제도를 봉건제라고 했으며, 유럽으로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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