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7. 4.

    by. 리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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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굴 제국은 인도에 있었지만, 인도 사람이 세운 나라가 아닌 이슬람 왕조로서, 이슬람교와 힌두교가 인도의 종교적 다양성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오랫동안 찬란한 문화를 꽃피워던 무굴 제국의 번영을 알아보겠습니다.

     

    1. 바부르

    무굴제국은 13세기에 시작하여 16세기 중반까지 지속된 이슬람 왕조로서 몽골제국을 세운 칭기즈 칸의 후손 티무르의 후손인 바부르가 인도를 정복하고 세웠습니다. 바부르는 스스로를 칭기즈 칸의 후예라고 말하며 황조로서의 위엄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인도를 통일한 후에 나라 이름을 페르시아 말로 몽골을 뜻하는 무굴이라고 지었습니다. 바부르는 이슬람교인었지만, 자신의 통치에 있어서 힌두교 군주들과 협력하고, 힌두교 신자들에게도 관대한 행동을 보였습니다. 무굴 제국의 상층사회는 이슬람 규범을 따랐지만, 하층민들은 힌두교를 신봉하고 실천하였습니다. 이러한 관대정책은 무굴 제국 내의 다양한 종교적 신념들을 하용하며 인도의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2.악바르

    바부르의 손자인 악바르는 무굴 제국의 세계화와 문화적 혼합의 주역이었습니다. 악바르는 자신의 군주기간에 인도땅에 살고 있던 힌두교도들과 이슬람교도의 갈등으로 인한 조화를 이루는 정책을 추친했습니다. 악바르는 힌두교인을 왕비로 맞이하고, 힌두교도들에게만 부과하던 세금을 없애고, 이슬람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힌두교와 다른 종교들과의 토론을 통해 상호 이해를 증신시키려 노력하였습니다. 악바르는 종교적으로 다양한 군대를 구성하였고, 제국을 하나로 모아 통일과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무굴제국의 건축물 타지마할

    3. 타지마할

    인도 아그라의 야무나 강가에 세워진 타지마할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문화재로 무굴제국의 제5대 황제인 샤 자한이 그의 왕비 뭄타즈 마할을 추모하기 위해 1632년부터 1653년 동안 건축한 무덤입니다. 뭄타즈 마할은 아홉 번의 임신을 겪으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가 사망하였고, 왕비를 기리기 위해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무덤을 건축하겠다는 다짐으로 타지마할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타지마할은 엄청난 백색 대리석과 석회암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넓은 정원과 수로를 중심으로 대리석 건축물은 중앙의 원반형 건물인 뭄타즈 마할의 무덤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대칭적으로 설계되었습니다. 페르시아와 바그다드, 시리아, 남인도의 유명한 건축가들과 보석 세공사들을 불러모아 대리석 조각과 세밀한 모자이크 무늬로 장식하였습니다. 타지마할은 높은 원목으로 만들어진 세련된 천장과 아치형 문과 창문들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일출과 일몰 때 빛의 변화에 따라 화려한 붉은, 주황색, 금색으로 빛나는 경치를 선사합니다. 이슬람과 힌두교의 다양한 문화양식과 조화로운 결합을 자랑하는 무굴 제국의 상징적인 건축물입니다.

     

    4. 아우랑제브

    아우랑제브는 무굴 제국의 제6대 황제로서 인도 지역의 대부분을 통일하고 광범위한 영토를 획득하는데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의 종교적으로 단호한 정책으로 힌두교의 반란이 일어나 제국의 분열이 났습니다.

    아우랑제브는 이슬람교를 엄격하게 따르는 황제였으며, 힌두교를 포함한 다른 종교들에게 학대와 차별적인 대우를 펼치고, 힌두교의 신성한 장소를 파괴하거나 이슬람교의 건축물을 세워 힌두교 신자들 사이에 분노를 샀습니다. 이로인해 선대 황제들이 이루어 놓았던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화합이 깨졌고, 힌두교들의 지속되는 반란으로 무굴 제국은 분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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