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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있는 몽골은 땅의크기가 매우 크지만, 대부분이 초원과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800년 전 몽골은 유라시아 대륙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거대한 제국이였습니다. 1200년대 초 테무친은 흩어져 있던 몽골 부족들을 하나로 통일 시키고, 우두머리인 칸의 자리에 올라 '칭기즈 칸'이라 불렸습니다. 칭기즈칸은 중앙아시아를 넘어 서아시아와 유럽의 동쪽 지역에 이르는 몽골제국을 세우고 1227년 칭기즈칸이 죽은 이후에도 그의 후계자들이 계속해서 주변 나라를 정복해 나갔습니다. 그리하여 몽골 제국은 세계 역사상 가장 넓은 제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
1. 몽골인
몽골인들은 초원에서 유목 생활을 해 왔기때문에 어려서부터 말을 타는 매우 능숙했습니다. 안장에 달린 등자를 이용해 말 위에서서 균형을 잘 잡을수 있어서 자유롭게 활을 쏠 수 있었던 몽골군은 무적의 군대가 되었습니다. 몽골군은 나무에 물소의 뿔과 힘줄을 붙여 조립궁이라는 활을 사용했는데, 조립궁은 크기가 작아 가지고 다니기 편했고, 다른활에 비해 탄력이 뛰어나 화살을 아주 멀리 쏠 수 있었고, 적의 갑옷을 단번에 꿰뚫을 만큼 화살의 위력도 강력했습니다.
몽골군은 소고기를 말려 가루로 만든 보르츠 라는 휴대 식량을 가지고 다니면서 필요할 때 꺼내 먹으며 전투를 하기도 했습니다.
2. 카라코룸
테무친이 칸의 자리에 오른 후 게르를 통한 다양한 이동식 캠프에서 카라코룸에 수도를 정하고 주변의 나라들을 정복해 갔습니다. 고대 실크로드를 따라 전략적으로 위치하여 동양과 서양 간의 무역 및 문화교류를 촉진하고 주요 무역로의 교차로에 위치하여 제국 전역의 정보 보급에 필수적인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수도로서 카라코룸은 몽골 제국의 정치 및 행정 중심지로서 군사작전, 영토관리 및 무역정책에 대한 결정이 내려진 제국 법원과 정부기관을 수용했습니다. 또한 다문화적 성격을 반영하여 불교수도원, 이슬람 사원도 평화롭게 공존했습니다. 이후 칭기즈칸의 사망후 쿠빌라이 칸에 의해 칸발릭(지금의 베이징)으로 수도를 옮겨 중국에 원나라를 세웠습니다.
3. 정복 전쟁
1231년 몽골 제국은 고려를 침공하여 고려의 왕과 신하들을 강화도로 달아났고, 육지에 남은 백성들이 힘을 합쳐 몽골군에 맞서 싸웠지만 수십년 동안 계속 된 싸움으로 몽골의 지배에 굴복했습니다. 고려의 침략으로 삼별초(특수부대)는 백성들과 함께 진도로 근거지를 옮겨 몽골군과 계속 맞서 싸웠지만 제주로 군사지로 옮기고 고려,몽골 연합군에 의해 패하고 말았습니다. 몽골침략이라고도 알려진 러시아와 유럽의 몽골 정복은 동유럽과 중부 유럽 일부의 왕국에 대항하였습니다. 1239년 강이 얼어붙은 틈을 타 러시아를 공격하여 승리하였으며, 1241년에는 기마병을 이요한 빠른 전술로 폴란드와 헝가리 지역에서 승리했습니다. 칭기즈칸의 후계자들과 그들이 이끄는 몽골인들은 13세기에 유럽 대부분을 차지하였으나, 몽골인들은 몽골 제국 내부 갈등으로 인해 유럽과 동유럽에서 철수하게 되고 1242년에는 서쪽으로 더 멀리 정복하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초원으로 후퇴하였습니다. 1258년 몽골군은 아바스 왕조의 수도인 바그다드를 공격하여 이슬람의 군대는 몽골군에게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칭기즈 칸은 정복한 나라가 몽골제국에 충성을 맹세하면 자유를 주었고, 그들의 재산은 물론 왕권, 종교의 자유도 인정해 주었습니다. 각 국가가 가진 고유의 문화를 존중해 주고 그렇게 몽골 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높였습니다. 이는 군대가 진출후 후퇴하여 돌아올때 보복하지 못하도록한 작전이였습니다. 활발한 문화 교류를 위해 여러나라 상인들이 지나다니는 비단길과 같은 무역로를 안전하게 지켜주기도 하며 다문화 정책을 이루었습니다.
4. 티무르
스스로를 칭기즈 칸의 후예라고 불렀던 티무르는 1336년 투르크 인으로 중앙아시아 영토를 정복하였습니다. 1370년대까지 티무르 제국을 세워 사마르칸트(현재의 우즈베키스탄)를 수도로 하여 주변 도시들을 정복했습니다. 티무르 제국은 투르크, 몽골, 페르시아 문화의 융합이였으며 이슬람 사원과, 학교, 궁전 등을 지어사마르칸트를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1398년에 티무르는 인도를 침공하여 델리를 점령하기도 하였습니다. 1405년 중국에 대항하여 군대를 이끌다가 사망하였고 티무르 제국은 그의 후손들 사이에서 분열되어 다양한 티무르 후계 국아의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5. 쿠빌라이 칸
칭기즈 칸의 막내 아들인 톨루이의 넷째 아들로, 칭기즈 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은 몽골 제국의 제5대 황제로서 역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통치자 중 한명으로, 1279년에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하여 대도(현재의 베이징)를 수도로 하는 원나라를 세운 창시자입니다. 쿠빌라이 칸은 몽골 전통을 유지하면서 중국문화의 일부 측면을 채택하고 유교를 장려했으며, 그의 궁정에서 중국 학자를 고용하여 문화 통합 정책을 추구했습니다. 쿠빌라이 칸의 통치 하에 원나라는 농업생산량을 늘리고 운송 네트워크를 개선하여 실크로드를 따라 대외 무역을 번성시켜 경제적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이후 내부 투쟁과 외부 압력은 원 왕조가 쇠퇴하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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